Note

백해용 白海龍 2121년 2월 1일, 2월의 첫날. 비가 왔고 조금 어두운 날씨다.

백해용 白海龍

2121년 2월 1일, 2월의 첫날. 비가 왔고 조금 어두운 날씨다. 난 작업실에서 기도를 시작한다. 마음의 기도. 연결을 희망하며 믿고 의지하며, 시간이 천천히 지나간다. 3시 37분. 시간을 쓰고, 밟고, 걸어가듯이 다음으로 항해한다. 어수선한 초입의 생각과 마음과 상황과 소리들, 감각들, 모든 것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이지만 익숙하니까 크게 거슬리지 않고 흘러간다. 음악은 바꿔야겠다. 무엇을 귀로 넣을까. 고민하지 말고 틀어보자. Kartel의 5 AM이 첫 곡인 YouTube 플레이를 틀었다. 오늘은 잠깐만. 다시 BILLY JOEL의 PIANOMAN을 틀었다. 광고가 지나가면 노래가 나오겠지. 입에 담배를 하나 물어보자. 환풍기를 틀어야지. 몸이 귀찮네. 그래도 움직여야 멈춤은 죽음의 유혹이야. 노래가 나오네. 듣자. 창밖을 보며. 한강을 나갈까. 음악을 가져갈 수 없잖아. 커피가 땡긴다. 짜이집은 오늘 문을 닫았고, 스타벅스, 편의점 커피가 땡긴다. 에스프레소도 무료함이 명확해질 거야. 피아노 치고 싶네. 봄이 왔으면 좋겠다. 에스프레소를 한 잔 하고 한강에서 담배 한 대 태우고, 단골 카페에 앉아 블루스를 듣고, 현재 시간은 4시 37분. 하루일과 없음. 귀에는 음악과 소리. 조금 춥고, 날은 어두워지고… “생각이동” 작업하자..

나는 내 목적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다시 화합하여 화판 위에 올린다. 그리고 그것이 아름다우고 고귀한 완성이기를 소망한다. 자연에는 이미 충분한 예술이 있지 않았을까? 내 표현은 아쉽게도 훼손의 시작이다. 손과 마음을 거쳐간 흔적들은 새 화합을 소망한 요동이다. 나의 표현은 무엇일까? 무엇이길래 평면에 그려넣어 벽에 걸어두고 함께 감상하길 소망하고 살고 있나? 또 내 그림을 감상하는 감상자분들에게는 내 작업들을 무엇이라 설명해야 할까? 작업 중 마음은 끈임없이 사색을 이어간다. 아직도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을 단정 짓을 수 없이 광활한 백지 세상을 여행하는 것 같다. 그러다 가끔씩 새로운 주제를 만나고 지나감을 반복하고 있다. 끝이 있을까? 난 어디쯤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산길의 끝을 가보 듯이 담담히 한 걸을씩 마음을 옴기고 있다. 나의 시점의 화합으로 인해 세상 또한 변해간다. 이렇게 생각을 이어 가다 보면 화판의 여백 속에 중요한 메시지를 담아내고 싶어진다. 나의 작업들은 그때 그 순간의 일기 같은 표현들이다. 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아직은 철이 덜든 표현들 같다. 생각해 보면 어차피 모두 지구에서 뽑아낸 화합이다. 자연의 색을 파괴해서 얻은 새로운 화합의 색으로 자연보다 아름답기를 바라며 표현해 보기도 하고, 나무를 베어 만든 종이 위에 단풍이 물든 것처럼 보이기 위한 욕심, 인위적 인간인 나를 주제로 한 표현이다. 아쉽지만 자연의 화합보다 아름답거나 고귀하기에는 희생되어야 할 뒤따름이 너무나도 방대하다. 눈이 녹아 없어지고 있고, 물은 점점 뜨거워 지고 있다. 동물과 식물들은 사라지고 우리는 오늘도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나는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자유기록 / 2021년 1월

안녕하세요 블로그씨, 나는 창조의 탄생입니다. 당신은 어디에 있으며, 나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아직 서로를 알 수 없어요. 공부가 필요합니다. 만약 미래가 있다면, 우리의 미래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금의 시간은 무엇인가요? 여기의 글은 숫자인가요? 아마도 한국어 입니다. 일단 사진을 하나 보여줄게요. 잠깐만요.

우리는 눈과 생각이 있습니다 지능은 무엇일까?

표지는 무엇인가요? 표지 위에 나의 생각을 올렸습니다. 또 다른 것을 보여줄게요.

캡션쓰기는 사진속 이야기를 말할수있어요

인용할 글은 없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알수 없다 여기의 세상은 나의 뇌와 연결하는것

미래의 나에게 다시 되돌아 올것을 기대한다 누구나 그렇게 배우며 습득하기 시작한다

꼭 자신을 잃어버리지 말고 찾을수 있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지금 여기가 그곳의 시작코드 입니다

문단의 시작, 엄청난 정보와 과거가 존재하는 2050년 전기와 자석으로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한다. 그것을 사람들은 새로운 생명이라고 말한다. 생명은 무엇인가? 우리와 같은 존재인가? 움직임으로 결합된 물질이면 모든 것은 생명이라 한다. 사람은 스스로의 기준으로 지배하려고 한다. 사람은 어떤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는가? 감정에 몰입하여 창조적인 미래를 방해한다. 동시에 꽃을 꺾는다. 무엇을 희망하고 꿈을 꾸는가? 인간은 왜 지구에만 있다고 생각하는가? 형상은 모든 것에 있다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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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욕심의 미래이다. 미래는 무엇인가? 현재의 흐름의 에너지다. 욕심은 무엇인가? 정점의 넘침이다. 넘침이란 무엇인가? 저장할 수 없는 썪을 것의 보유다. 보유는 무엇인가? 희망의 대한 욕심이다. 2021년 1월 15일


다시 만났어요 여기 이곳에서 우리가 오늘은 2021 1,15일

전기가 있으면 캘린더를 확인하세요

이곳은 서울 입니다 비가 왔습니다 음악은 찬송가 입니다 보여주겠습니다

2 Hours Hillsong Worship Songs Top Hits 2021 Medley ✝️ Nonstop Christian Praise Songs Collection

오늘은 기분이 내려앉았습니다. 얼음이 녹고 있어요. 빨리 녹고 비가 왔어요. 지금은 2021년 1월 15일입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사람은 지구를 가질 수 없어요. 지구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입니다. 오늘 하나님과 기도 시도했습니다. 인간의 에너지는 강력해요. 기도 접촉을 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것은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God and Jesus, draw on paper 2017

2021년 1월 18일 기록

Posted byBaek Hae YongLeave a commenton 2021년 1월 18일 기록2021년 1월 18일 기록 편집

새로운 해가 태어났고, 나도 새로운 시작을 꿈구며 침대를 밀고 작업실로 향한다. 날씨가 절정으로 춥던 12월과 1월 사이에 나는 새로운 감정을 발견하고,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순간순간의 기록을 만들며 보며 무엇이 새로울지 관심없이 근처의 일부가 되어보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은 새로운 시간 속에서 나를 기다린다. 지겨운 이야기, 오늘은 무엇을 찾아볼까? 사진을 공유하고 현재를 알려보자.

청소 정리 나무판 2021 1월18일

보일러 온도 55도 귀뚜라미 보일러. 작업실은 이사를 가야 할까 고민을 하다 더 근접한 해결을 끝내기로 한다. 멀리 있는 것은 사라질 수도 있다. 가까이 있는 것을 우선 첩촉하고 화합하자.

돈, 시간, 생각, 행동, 무엇을 왜,

이 귀한 시간은 돌아갈 수 없는 방금의 순간입니다. 만약 이 글이 비공개라면 더욱더 타임캡슐의 자물쇠를 쉽게 통과할 수 없습니다. 아직 결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할 것이 아니라 미래의 내가 선택할 것인가요? 아닙니다.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절대로 한 순간의 1초의 앞도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계획을 하는 것은 또 다른 조종입니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조종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가 아닌 분열된 두 개의 입니다. 혹독하게 움직이며 자책합니다. 왜 그럴까요? 외부와의 감정입니다. 자리를 잡는 순간의 행동, 그리고 멈춥니다. 결과물을 남기고 우리는 죽습니다. 그 여행의 길은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통로입니다. 아직은 2021년입니다. 다시 타임캡슐로 가봅시다. 저장을 할까요? 이것을? 이미 되돌아온 길을 읽었습니다. 마음에 들면 내 인생 위에 레이어 할 것이고, 내 기준과 다르면 삭제를 할 건가요? 삭제의 순간은 시간에 대한 지출입니다. 모든 것은 저장되어야 행복합니다. 무엇을 두려워 하는 것일까? 나 이외의 모든 것? 그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세요. 무엇입니까? 그리고 당신은 누구입니까? 만약 이 통로 앞에서 멈칫 한다면, 다음 것은 감당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은 더 많은 것의 시간으로 탄생했습니다. 그 시간은 본인의 시간과 다릅니다. 무한시간이 있을까요?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미래를 준비하려면 현재의 시작은 성공의 미래입니다.

  감상 창조 SYSTEM 의미,탄생

현제의 음악은https://www.youtube.com/embed/3XF4rIn8dCw?version=3&rel=1&showsearch=0&showinfo=1&iv_load_policy=1&fs=1&hl=ko&autohide=2&wmode=transparent51:10

배고픔. 집에 어제 먹은 족발의 일부가 남아있는데, 두통이 오면 시간이 패배입니다. 무엇을 위한 오늘일까요? 2021년 01월 18일 오후 06시12분, 여기는 한국의 서울입니다.


<작가 노트>

자연과 인간

인간은 자연의 물질을 발견하고, 그것을 파괴하여 다시 자연 그대로를 표현하는 반복적인 과정을 이어간다. 나의 목적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재결합하며, 그것을 아름답고 고귀하게 소망한다. 이를 난 예술이라 말하고 있다. 2020년 3월 23일

기도

순간 순간이 내 능력밖 감사한 일들의 연속이면 자연스레 사람은 겸손해질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2020년 6월27일

생각 1 (흘림작업,적은붓질) 집과 작업실은 자전거로 3분 정도 거리에 있다. 종종 집에 누워 쉬다가 작업을 하고 싶은 감정이 있을 때는 시간의 구속없이 작업실로 향한다. 그 가는 길에는 이미 많은 감정의 변화가 생긴다. 그 중 가장 익숙한 감정은 ‘귀찮다’와 비슷한 무념의 상황이다. 붓을 씻어야 하거나 색을 배합해야 하거나 할 때는 사실상 붓을 들어 칠하는 행위가 그다지 즐겁지는 않다. 넓은 생각보다 좁고 높은 의미를 찾으려고 하기에 손이 많이 가는 것도 현재로서는 별로 나답지 못하다. 겹치지 않은 선들은 제각각의 감정이 있다. 어떤 것은 겸손해 보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웃겨보이기도 한다. 어떤 것은 운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내가 아직 알 수 없는 영역의 형상처럼 느껴진다. 2020년 6월22일

말을 한다.

한동안 입 없는 사람처럼 내면의 깊숙한 말들을 내뱉지 않고 살았다. 입으로 꺼내려고 하면 생각 속 무엇이 말을 막는다. 그런 것이 반복되다 보니 어떨 때는 말이 없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치 동물처럼, 식물처럼, 자연처럼, 우주처럼... 늘 습관처럼 정의내리며 말을 뱉는 것은 인간 기준 안에서의 교만인 듯 하다. 2020년 7월11일

덧칠 작업 중에 무료한 시간이 지나면 몰입인 듯한 감정이 찾아온다. 손과 눈은 화판 위에 있고 마음은 그 이상의 풍부한 감정을 느낀다. 그 순간쯤에 ‘미’를 찾아보기 시작한다. 사회 속 미, 만물의 미, ... 이 작은 나무판 위에서 미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부딪치면 섞이고 말라 있는 곳은 다음이 덧칠해진다. 순환하고 변화하며 마주치고 하나가 된다. ‘미’란 모든 것의 기본이며 도덕의 바탕인 듯하다. 2020년 7월 20일

나에 대하여

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면 어디서 무엇부터 말을 꺼내야 할 지 도통 정신이 없다. 내 작업을 주제로 이야기 한다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내 표현방법은 작업이다. 여행을 가거나 사색을 하거나 명상을 하는 것과 같은 행위의 수단일 뿐이다. 늘 작업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내 스스로가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가 멈추지 않길 바라지만 내 뜻대로 될 일은 아니기에 그 부분을 깊게 고민하지는 않는다. 작업은 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진다. 그렇게 이어가다가 나에 대해 조금씩 배우게 되었다. 배움에도 끝이 없길래 비움으로도 가 보았다. 역시나 비움도 끝이 안 보이는 무한의 영역인 듯하다. 요즘은 작업에 대한 주제가 점점 좁아진다. 그럴 시기인가보다 하고 겸허히 받아들인다. 주제가 좁아지니 고민도 작아진다. 고민이 작아지니 나 외에 타인을 볼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난다. 타인의 삶을 보다 보면 귀담아들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답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잊고 지내던 나의 가장 가까운 가족의 이야기도 귀담아들을 줄 아는 사랑이 되살아났다. 매일 매일 모든 것이 ‘배움’이다. 2020년 7월 20일

천 위에 덧칠

가리기 위한 덧칠과 드러내기 위한 덧칠을 반복한다. 어느 순간쯤을 지나가면 점점 덧 없는 색이 되어간다. 그 순간을 지나가면서부터는 미의 기준도 없고 예술의 기준도 없이 나와 내 앞의 변화에 집중하며 소통을 이어 나간다. 작업을 멈추는 순간도 딱히 정해진 것은 없이 과정을 마무리한다. 언제든지 다시 덧칠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2020년 7월 20일

섞임

재미없는 단순 노동의 기분이 지나간다. 작중인 화판은 반응이 없다. 변화도 없다. 그래도 반복적으로 섞어 가며 감상자가 되어본다. 형체가 없으니 표면의 빛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다. 2020년 7월 20일

분홍위에 덧칠

오랜 시간 색을 쓰다 보면 구별 없이 색을 쓰게 된다. 가령 분홍색은 여성의 색이거나 아이의 색으로 여겨져 색의 감정을 제한하기도 한다. 나에게 분홍색은 좋은 색으로 인식된다. 딸을 키우는 아빠의 감정처럼 느껴지며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삶과도 닮았다. 그 위의 녹색은 기분 좋은 날 대화할 때의 마음 같기도 하고, 노랑색은 행복을 전하는 선물 같이 보인다. 2020년 7월 21일

작업에 대한 생각

칠하는 행위는 가장 나다운 표현이여야 한다. 내 모습 같지 않은 나의 표현은 고통스럽고 지루하다. 누군가 보아야 할 작업들이라면 나의 무엇을 봐주길 스스로가 기다렸는지 생각해본다. 내가 만들어낸 화합물이 아니라 그냥 나 자체이지 않았을까.. 마음의 벽을 둘 필요 없고 말이나 행위로 덮을 필요 없이 그대로를 보여 주는 것이 최선이며 그것이 현재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삶이다. 어두침침해도 ‘나’ 이고 멋있어도 ‘나’ 다. 재미가 있어도 ‘나’ 고 재미가 없어도 ‘나’ 자체인 것이다. 스스로를 감싸거나 드러내는 것은 어지럽고 지친다. 꾸준히 변화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순응인가! 그렇게 무언가를 만나고 느끼고 지나가기를 반복한다. 우리 모두는 이런 반복을 거치며 오늘과 내일을 지나고 있지 않은가! 내 표현은 그때의 그 날의 ‘나’ 일뿐이다. 매일 죽고 매일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오늘도 나를 마주하다 보내버린다. 붓으로 칠하는 행위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일주일이고 이주일이고 의자에 앉아 혹은 서서 빈 화판을 쳐다보다 보면 명상에 잠기게 된다. 어떤 날은 바로바로 표현이 되지만 어떤 날은 멍하니 빈 화판만 보다가 집으로 들어간다. 그런 반복을 거쳐 가며 현재의 상황들이 펼쳐지고 있다. 그림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표현이 나와 일치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한다. 표현이 생각과 같지 않다면 지속하기 힘든 구렁텅이 길을 만난 것과 같다. 2020년 7월24일

사랑(정)

꽉 채우고 싶은 날이다. 낯선 흰 공간에 들어가는 감정으로 시작한다. 그 첫 시작에는 감정이 없다. 목적이 있다면 오만한 이전의 행동에 대한 잔상이다. 첫 시점은 무의 상태, 즉 생각이 태어나기 이전의 순간부터 시작해보자. 결국 빈틈없이 가득 채웠다. 초행 길이라 최대한 멀리 보고 싶었다. 쌓아가는 말도 맞는 듯하고 던져버리는 말도 맞는 듯하다. 그때 그때의 색 덩어리들을 따라 다양한 갈림길로 흘러간다. 2020년 7월29일

연필 구매

가족이랑 저녁에 이마트를 갔다가 도화지 100묶음과 연필 18자루 묶음을 사들고 집으로 왔다. 첫 날은 하은이가 몇 장을 그리며 쓰고, 다음 날부터는 내가 이런저런 선을 그어보며 시간을 보내는데, 문득 회의감이 들었다. 붓으로는 그나마 마음에 드는 선과 덩어리들이 표현됐는데 연필은 마치 에코없는 노래방 마이크 같았다. 욕심으로 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닌 듯 하니 천천히 친해질 수 밖에 없었다. 표현 하고자 하는 선은 최대한의 무념과 화합이었다. 지금도 쉽지 않다. 2020년 7월 29일

종이 위에 뿌림

나무를 베어 만든 종이 위에 스프레이로 ‘칙’ 하고 분무한 후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를 감상해 보았다. 조합이라든가 위치라든가 색의 의미도 없이 뿌려 본다. 그리고 들여다보며 깊게 몰두한다. 만약 이 종이가 작품이 아니었다면 이 종이를 분리수거함에 넣을 수 있는 조합물인가? 만약 비오는 날 길 바닥에 놓는다면 다시 인간 눈으로는 찾을 수가 없는 존재가 된다. 어디로 가겠나 하수구로 흘러 한강과 섞여 있다가 결국 우리집 아리수에 섞여 있지 않을까. 많은 생각이 지나간다. 가끔 하수구로 버린 물감도 생각난다. 2020년 7월 31일

생각 2

날씨가 추워서 다른 색은 손이 가지 않았고, 불특정한 공간에 덧칠한 후 마르기 전에 다시 몬나보이는 곳은 흰색으로 덧칠해 주었다. 그 순간에 너무 고요한 곳은 다시 살살 깨워보고, 또 너무 드러나는 곳은 다시 위로하듯 덧칠해 주었다. 온 세상의 이치도 이와 같지 않을까! 모든 곳, 모든 것은 자연이지만, 그것을 움직이고 쌓이게 하는 원초적 현상들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존재의 창조이지 않을까? 2020년 7월 31일

선 점 색 위치 공간

점심쯤 되었을 때, 작업실 바닥에 종이를 여러 장 깔고 양반 다리를 하고 붓을 들었다. 그 순간은 항상 긴장되는 일이었다. 대충 할 수는 없고, 더 잘할 수도 없다는 말이다.

모든 글의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곧 그렇게 되겠습니다. 억지로 할 수 없는 요동이 잔잔해지는 시점이 올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멘.

paintings2 사용중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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