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믿음을 얻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이 있다. 불안을 주는 도덕적이지 않은 행동들, 양심을 깨우는 혼자의 시간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끝없는 반성과 노력이다. 이것은 원동력이며 에너지의 시작점과 같다.
모두는 꿈을 꾼다. 크고 작은 꿈을 꾼다. 꿈을 이루는 사람이 있고 못 이룬 사람이 있다. 그리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꿈을 급히 이룬 사람은 그 후가 대비할 수 없는 난관이고, 꿈을 아직 못 이룬 사람은 현재가 그 꿈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고, 오랜 기다림속에 있는 사람은 꿈을 이룬 후를 보는 사람이다. 모든 것은 같다. 더 좋고 나쁨은 스스로의 균형일 뿐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지 찾아가는 친구가 작업실에 와서 잠시 담소를 나눴다. 나도 내게 되물어본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왜 난가.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는가. 파고들어가는 생각을 입으로 꺼내려고 하면 결국 알 수 없는 비현실적인 순간, 그쯤에 내가 있나. 나를 잃어버린 것에는 육체가 없다. 그곳을 다시 비집고 들어가 있는 정신은 나인가. 그것은 겹겹이 쌓인 잔상들의 하모니다. 일기장을 건네받아 숙지한 것과 같은 또 다른 나다. 나는 몇 명인가. 셀 수 없이 많은 확률의 내가 있다. 길을 가다 좌측으로 가면 좌측으로 간 나고, 그 순간 우측으로 가면 우측으로 간 나도 있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내가 있다. 죽어도 죽은 나고 살아 있으면 살아 있는 나다. 버스를 탈까 택시를 탈까 생각하는 내가 있고 무수히 많은 나를 징검다리 넘어가듯이 무의미를 반복한다. 그 틈에는 눈을 깜박이는 찰나, 익숙한 연속이다. 내가 그렇게 하나의 덩어리고 그 외 모든 것이 한 덩어리다. 이 말은 지금의 내가 알 수 없는 미래의 나에게 내미는 메시지다. 그때의 너는 이것을 알겠지. 그리고 지나가 버린, 버리듯이 살아온 시간에 차가운 바람에 그 밤에는, 너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다를 바 없는 그때의 그 시간이 지금과의 연결을 시도하며 이 전기 노트 위에 글을 적는다. 시기는 언제인가 아마도 2045년 11월. 추운 겨울 바람이 부는 밤의 파도 소리와 부서지는 하얀 바닷물. 그곳에는 내가 왜 가 있나. 왜 거기에 있나. 그것은 지금 2024년 2월의 시간에 만들어둔 한 점이다. 한 순간이다. 한 인생이다. 그것은 나인가. 그것은 왜 나인가, 있지도 않은 2045의 순간이 왜 있나. 세상은 혼자가 아니다. 나는 어디에도 있다. 어제 만난 사람의 생각 속에도, 오늘 만난 강아지의 마음 속에도, 앉아 있던 의자에도, 적어 내려간 전기 신호의 세상에도 모든 곳, 모든 것에 내가 있다. 그것들의 에너지는 여러 수없이 많은 나를 존재시킨다. 그곳을 다니는 이 정신은 하나와 두 개의 시작이다. 또 그 두 개, 세 개… 천 개, 만 개… 이 또한 멀리서 보면 하나다. 이리한 모든 것들은 또 다시 아주 먼 망상 속에선 하나다. 그 하나를 더 먼 망상 속에서 안 보이는 무다. 그런 공과 하나의 연속인 세상 속에 내가 있고 모든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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