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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긴 글: 작업에서 반복되는 반원의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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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긴 글: 지나온 시간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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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긴 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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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긴 글: 백해용의 예술: 화합, 철학적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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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긴 글: 정리정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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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해용展 Harmony 화합 2025 3.1~3.10 Gallery ZEINXE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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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존재 시키지 않기 위해 안 본다는 것.
무작위로 떠오르는 망상과 눈을 뜨면 보이는 모든 것들. 눈을 감으면 사라지는가. 나의 안쪽을 비추기 시작한다. 존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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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가 아닌, 끝없이 샘솟는 메시지를 전달받는다
지속적인 깨달음 속에서의 삶은 감당할 수 없는 감정과 인식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 충만함은 발 한 걸음조차 조심스럽게 만든다. 매일의 일상 속에서 우리는 그 징후를 탐색하고, 말 한마디조차 엄청난 세계관 속에서 선택하게 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인간은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그것은 마치 supine,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듯한 감각이다. 넘치는 감각은 고통으로 전환되기도 하며, 끊임없이 피어나는 생각들 속에서 길을 잃게 만든다.
많은 것을 알게 될 수도 있지만, 숨을 쉬고 살아 있는 한, 더 깊은 영역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 해체되고, 작아져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존재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키고, 그 길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세상은 그러한 여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단지 조금씩 다르게 조율되었을 뿐이다.

2024 Locker Paint on Wood Pannel 160cm x 120cm -
촬영과 작업, 도통 쉽지 않다
요즘 촬영과 작업을 같이하다 보니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앞니 밑, 아랫니 사이에서 이빨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하여, 혀로 계속 찾아 대니 혓바늘이 돋았다. 이와 같은 사소한 문제조차도 제 집중력을 방해하고 있어, 지속적으로 신경이 쓰인다. 치과에 가야 할지 고민하지만, 치과 방문은 매우 싫은 경험이다. 과거 치과에서 겪었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어 더욱 꺼려지는 상태이다. 현재 작업의 진행은 크게 변화 없이, 마치 반원을 그리듯이 연속적으로 캔버스를 채워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을 담아내고자 하여도 그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함을 느낀다. 개인적으로 만족스럽지만, 과연 무엇이 마음에 드는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안정적인 형태인가, 아니면 형태의 연속이 한정적일 수 있으나 그 안에서도 많은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가. 다양한 색채와 질감을 조합하며 나만의 독창적인 언어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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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믿음을 얻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이 있다
강한 믿음을 얻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이 있다. 불안을 주는 도덕적이지 않은 행동들, 양심을 깨우는 혼자의 시간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끝없는 반성과 노력이다. 이것은 원동력이며 에너지의 시작점과 같다.
모두는 꿈을 꾼다. 크고 작은 꿈을 꾼다. 꿈을 이루는 사람이 있고 못 이룬 사람이 있다. 그리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꿈을 급히 이룬 사람은 그 후가 대비할 수 없는 난관이고, 꿈을 아직 못 이룬 사람은 현재가 그 꿈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고, 오랜 기다림속에 있는 사람은 꿈을 이룬 후를 보는 사람이다. 모든 것은 같다. 더 좋고 나쁨은 스스로의 균형일 뿐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지 찾아가는 친구가 작업실에 와서 잠시 담소를 나눴다. 나도 내게 되물어본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왜 난가.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는가. 파고들어가는 생각을 입으로 꺼내려고 하면 결국 알 수 없는 비현실적인 순간, 그쯤에 내가 있나. 나를 잃어버린 것에는 육체가 없다. 그곳을 다시 비집고 들어가 있는 정신은 나인가. 그것은 겹겹이 쌓인 잔상들의 하모니다. 일기장을 건네받아 숙지한 것과 같은 또 다른 나다. 나는 몇 명인가. 셀 수 없이 많은 확률의 내가 있다. 길을 가다 좌측으로 가면 좌측으로 간 나고, 그 순간 우측으로 가면 우측으로 간 나도 있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내가 있다. 죽어도 죽은 나고 살아 있으면 살아 있는 나다. 버스를 탈까 택시를 탈까 생각하는 내가 있고 무수히 많은 나를 징검다리 넘어가듯이 무의미를 반복한다. 그 틈에는 눈을 깜박이는 찰나, 익숙한 연속이다. 내가 그렇게 하나의 덩어리고 그 외 모든 것이 한 덩어리다. 이 말은 지금의 내가 알 수 없는 미래의 나에게 내미는 메시지다. 그때의 너는 이것을 알겠지. 그리고 지나가 버린, 버리듯이 살아온 시간에 차가운 바람에 그 밤에는, 너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다를 바 없는 그때의 그 시간이 지금과의 연결을 시도하며 이 전기 노트 위에 글을 적는다. 시기는 언제인가 아마도 2045년 11월. 추운 겨울 바람이 부는 밤의 파도 소리와 부서지는 하얀 바닷물. 그곳에는 내가 왜 가 있나. 왜 거기에 있나. 그것은 지금 2024년 2월의 시간에 만들어둔 한 점이다. 한 순간이다. 한 인생이다. 그것은 나인가. 그것은 왜 나인가, 있지도 않은 2045의 순간이 왜 있나. 세상은 혼자가 아니다. 나는 어디에도 있다. 어제 만난 사람의 생각 속에도, 오늘 만난 강아지의 마음 속에도, 앉아 있던 의자에도, 적어 내려간 전기 신호의 세상에도 모든 곳, 모든 것에 내가 있다. 그것들의 에너지는 여러 수없이 많은 나를 존재시킨다. 그곳을 다니는 이 정신은 하나와 두 개의 시작이다. 또 그 두 개, 세 개… 천 개, 만 개… 이 또한 멀리서 보면 하나다. 이리한 모든 것들은 또 다시 아주 먼 망상 속에선 하나다. 그 하나를 더 먼 망상 속에서 안 보이는 무다. 그런 공과 하나의 연속인 세상 속에 내가 있고 모든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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